이해인 수녀와 혜민 스님의 각별한 인연

입력 2016-05-02 13:47  



(고재연 문화스포츠부 기자) 지난 달 30일 서울 중림동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이해인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 출간 40주년 기념 저자 강연회에 깜짝 손님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혜민 스님이었습니다.

이 수녀와 혜민 스님은 서로를 ‘이모 수녀’ ‘조카 스님’ 이라고 부를 정도로 각별한 사이입니다. 서로 안부도 자주 주고받고, 고민이 있을 땐 상담도 합니다. 혜민 스님의 신간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는 이 수녀가 이렇게 추천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종파를 초월해 스님의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친구처럼 손잡아주는 다정함과 공감을 끌어내는 스님의 따뜻한 인간미 때문일 것입니다.”

유독 스님과 수녀가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혜민 스님이 이날 행사에서 ‘수녀와 스님이 친한 이유 세 가지’를 꼽았는데요. 첫째, 유니폼이 있어 어딜 가나 눈에 띕니다. 둘째, 독신으로 살아가는 처지가 비슷합니다.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건 이 때문이죠. 셋째,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겁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의 양상은 종교를 떠나 비슷하다고 하네요. 혜민 스님은 “불자들이 스님을 이해하는 것보다 수녀님이 스님을 이해하는게 더 쉬울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개인적인 공통점도 많습니다. 이 수녀는 1976년 '민들레의 영토'로, 혜민 스님은 2012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로 예기치 못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2년 전에 제가 쓰지도 않은 시가 인터넷에 돌아다녔는데, 다른 사람의 시였어요. 얼마 뒤 ‘혜민 스님이 남의 시를 도용했다’는 기사가 났어요. 정말 억울했죠. 무작정 부산 광안리 성 베네딕트 수녀원 ‘해인글방’에 가 수녀님께 하소연을 했어요.”

그 때 이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혜민 스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인터넷에 내가 쓰지 않았는데 내가 썼다는 시가 40편이 넘어요.” 혜민 스님은 자신보다 더 황당한 일을 많이 겪었던 이 수녀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분들은 더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날 행사에서 혜민 스님은 '민들레의 영토'에 수록된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를 낭송했습니다. 시에는 ‘그러하오나 주님, 당신 모습 수시로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배우 김현주 씨는 “스님 입에서 ‘그러하오나 주님’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며 신기해 했습니다.

이 수녀는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습니다. 이 인연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 시집을 법정 스님한테 보내고, 법정스님이 이 수녀에게 답장을 보내면서 두 사람은 수십 년간 인연을 쌓았습니다. 이 수녀가 법정 스님의 입적 추도사를 쓰기도 했죠.

법정 스님 때문에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억울했던 사연도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TV 대담에서 법정 스님이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 수녀는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요즘 스님이 저한테 보낸 편지가 인터넷에도 떠 있더라고요. 또 그걸 러브레터 주고받은 거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걸 변명해야 되다니 공인으로 사는 게 참 힘들어요. 오해도 많이 받고요. 그래서 그 스트레스로 제가 이렇게 암도 걸리잖아요. (웃음)”

우연히 법정 스님과 같은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천주교 신자들은 법정 스님에게, 불자들은 이 수녀에게 와서 사인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다고 하네요.

종교인들이 내부 목소리에만 귀 기울인 나머지 사회 통합과 화합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하는데요. 이 수녀와 스님들의 ‘아름다운 동행’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 (끝) yeon@hankyung.com (사진 제공=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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